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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가을이었다. 별다른 목적도 없이, 아내와 나는 아이의 작은 손을 하나씩 나눠 잡고 아파트 단지를 걸었다. 단지 안의 나무들은 한창 잎을 내려놓는 중이었다.

바람이 한 번 지나가자 가지 끝에서 낙엽 하나가 떨어졌다. 곧장 떨어지지 않고, 공중에서 흔들흔들, 좌우로 한참을 망설이다 천천히 내려앉았다. 그 장면을 본 아이가 갑자기 까르르, 하고 웃었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작은 몸을 다 써서, 까르르까르르 웃었다.

솔직히 그 무렵의 나는 웃을 여유가 없는 사람이었다. 머릿속은 늘 복잡했다. 당장의 육아와 직장,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 거기에 아직 오지도 않은, 어쩌면 영영 오지 않을 미래의 문제들까지 미리 끌어와 걱정하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짐을 잔뜩 얹고 걷는 기분으로 살던 때였다.

그런데 아이의 웃음소리에는 그런 걸 무너뜨리는 힘이 있었다. 낙엽 한 장에 온몸으로 웃는 아이를 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걱정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다만 그 순간만큼은, 나도 그냥 행복했다.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아이를 안아 올리며 문득 그런 생각에 빠졌다. 행복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돌이켜보면 나는 늘 행복을 멀리 두고 살았다. 무언가를 이루면, 어떤 조건이 채워지면, 그때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 그러니 지금은 그저 버티는 시간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내 품의 아이는 낙엽 한 장 떨어지는 것만으로 세상을 다 가진 듯 웃고 있었다. 행복은 거창하고 대단한 게 아니었다. 손에 잡히지도 않는 먼 데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떨어지는 낙엽처럼, 발밑에, 바로 지금 여기에 있었다. 결국 행복은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그걸 알아채느냐 마느냐의 문제였고, 어느 쪽이든 본인이 하기 나름이었다.

아이는 행복을 좇지 않았다. 그냥 그 자리에서 주웠다.

나쁜 날도, 괜찮다고

그날 이후로 나는 ‘버틴다’는 말을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됐다.

나이를 먹을수록 우리는 하루하루를 희망으로 버틴다고 말한다. 한동안 나는 그게 긍정적인 상태를 애써 지켜내는 일이라고 믿었다. 불행의 요소들을 하나하나 걷어내고, 매일을 완벽한 하루로 만들어, 행복을 붙잡아 두는 것. 그렇게 노력해야만 무너지지 않는 거라고.

지금은 어쩌면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루는, 아니 한 시간은 끊임없이 바뀐다. 어떤 시간은 힘들고, 어떤 시간은 어렵고, 어떤 날은 실수를 하고, 또 어떤 날은 실패 앞에서 주저앉는다. 그걸 전부 막아내고 흠 없는 하루를 만들려는 건 애초에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희망을 갖고 버틴다는 건 나쁜 날을 없애는 게 아니라, 나쁜 날도 찾아올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일에 가깝다. 오늘이 무너져도 괜찮다고, 내일은 또 다른 시간이 올 거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것. 행복은 나쁜 날이 하나도 없는 상태가 아니라, 나쁜 날이 와도 그 사이에서 까르르 웃을 줄 아는 마음이었다.

아이는 아마 그날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흔들리며 떨어지던 낙엽도, 제 웃음소리도, 그걸 바라보던 아빠의 얼굴도. 그래도 나는 이렇게 적어 둔다. 언젠가 네가 자라, 아직 오지도 않은 걱정에 잠 못 드는 밤을 만나거든, 그때 이 가을의 낙엽 한 장을 떠올려 주기를. 행복은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고, 그걸 나에게 먼저 가르쳐 준 사람은 다름 아닌 너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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