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개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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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이름을 짓는 일은, 생각보다 무거운 일이었다.
한 사람이 평생 수만 번 불릴 단어를 고르는 일. 서류마다 적히고, 친구들이 부르고, 언젠가 그 아이 스스로 자신을 소개할 때 입에 올릴 두 글자. 나는 그 일을 두 번 했다.
그리고 두 번 모두, 작명소의 획수가 아니라 내 인생에서 건진 것을 담기로 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내게 남은 핵심은 두 가지였다. 거창한 철학책에서 배운 게 아니라, 부딪히고 식고 다시 데워지는 시간들 속에서 추려진 두 문장. 이 글은 그 두 문장과, 그것이 두 아이의 이름이 된 이야기다.
첫 번째 핵심 — 끊임없이 성장하라
첫 번째 문장은 이것이다. 본인에게 한계를 두지 말고, 그 한계를 넘으려는 노력을 멈추지 마라.
뻔한 말처럼 들린다는 걸 안다. 나도 오랫동안 이 문장을 포스터 속 표어처럼 흘려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말이 다르게 읽히기 시작했다 — 내가 만난 한계의 대부분이, 측정된 것이 아니라 선언된 것이었다는 걸 깨달으면서다.
“나는 수학머리가 없어.” “재테크는 나랑 안 맞아.” “이 나이에 무슨.”
돌아보면 그 말들은 시험해 본 결과가 아니었다. 시험해 보기 전에 미리 그어 둔 금이었다. 한계라고 믿었던 선의 대부분은, 내가 거기서 멈췄기 때문에 한계가 된 것이다. 임계점에서 적었던 80도의 이야기와 같은 구조다 — 끓는점이 멀어서 못 간 게 아니라, 80도에서 불을 껐기 때문에 못 갔다.
한계는 측정되기 전에 선언된다.
그래서 성장은 나에게 결과의 단어가 아니라 방향의 단어가 됐다. 어제의 나보다 멀리 — 그 방향이 유지되는 한, 속도는 느려도 괜찮다는 것. 6년 전 거래소 앱 앞에서 허둥대던 내가 이 블로그를 쌓는 사람이 되기까지, 대단한 도약은 한 번도 없었다. 방향을 잃지 않은 작은 걸음들이 있었을 뿐이다.
햇빛 — 첫째의 이름
첫째의 이름은 도윤이다. 나아갈 도에, 햇빛 윤.
햇빛을 떠올려 보라. 햇빛은 멈추는 법을 모른다. 닿을 수 있는 곳까지, 막히기 전까지, 끝없이 퍼져 나아간다. 햇빛에게 “여기까지만 가라”고 금을 그을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스스로도 긋지 않는다.
첫째에게 부여한 의미가 그것이다. 햇빛처럼, 한계 없이 끝없이 퍼져 나아가라.
네 가능성의 끝을 남이 정하게 두지 말 것.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 네 스스로도 정하지 말 것. 아빠가 인생에서 가장 늦게 배운 첫 번째 핵심을, 너는 이름으로 먼저 갖고 시작하는 셈이다.
두 번째 핵심 — 본질에 집중하라
두 번째 문장은 이것이다. 파생된 것들에 휘둘리지 말고, 모든 것을 꿰뚫는 본질을 붙잡아라.
세상은 본질보다 파생물이 압도적으로 시끄럽다. 투자의 세계가 특히 그랬다. 가격은 매초 움직이고, 뉴스는 매시간 쏟아지고, 누군가는 늘 확신에 차서 외친다. 그 소음들을 다 쫓아다니던 시절의 나는 바빴지만, 어디에도 도착하지 못했다.
변한 것은 공부가 쌓이면서였다. 가격의 출렁임 아래에 통화량과 금리라는 물결이 있고, 그 아래에 신용이라는 구조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 쫓아야 할 것과 흘려보내도 되는 것이 구분되기 시작했다. 표면은 무한히 다양하지만, 본질은 몇 개 되지 않았다. 그리고 본질을 붙잡고 있으면, 표면의 출렁임은 더 이상 나를 끌고 다니지 못했다.
노이즈는 크고, 본질은 조용하다.
이것은 투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에서도, 관계에서도, 공부에서도 같았다. 휘둘리는 삶과 중심이 있는 삶의 차이는 정보량이 아니라 — 무엇이 본질인지 아는가의 차이였다.
달빛 — 둘째의 이름
둘째의 이름은 도영이다. 인도할 도에, 달빛 영.
이번에는 밤하늘을 떠올려 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 — 온통 어둠이라는 노이즈뿐인 하늘에, 달빛은 고고히 떠 있다. 요란하지 않다. 출렁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차분한 빛 하나가 밤길을 걷는 사람의 방향이 된다.
둘째에게 부여한 의미가 그것이다. 달빛처럼, 어둠 속에서 중심을 지키며 올바르게 인도하라.
세상의 소음이 아무리 커도 휘둘리지 말 것. 네가 붙잡은 본질로 너의 길을 비추고, 할 수 있다면 곁에 있는 사람의 길까지 비추는 사람이 될 것. 아빠가 두 번째로 배운 핵심이, 너의 이름이다.
해와 달 — 둘은 한 쌍이다
햇빛과 달빛 — 이 짝은 우연이 아니다. 처음부터 의도한 설계였다.
두 아이의 이름을 따로따로 지은 게 아니라, 한 쌍으로 지었다. 하나의 빛만으로는 내가 배운 두 핵심을 다 담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해와 달이 함께 있어야 하루가 완성되듯, 두 문장도 함께 있어야 비로소 작동한다.
성장만 있고 본질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가. 열심히는 가는데 방향이 없다. 더 빨리, 더 많이 — 그런데 어디로? 방향 없는 성장은 전진이 아니라 표류다.
본질만 있고 성장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가. 방향은 아는데 걷지 않는다. 옳은 말은 다 아는데 삶은 제자리다. 성장 없는 본질은 나침반을 쥐고 앉아 있는 것과 같다.
해는 나아가게 하고, 달은 잃지 않게 한다.
그래서 두 아이의 이름은 각자의 것이면서, 나란히 불릴 때 완성되는 하나의 문장이기도 하다. 햇빛의 추진력과 달빛의 방향감 — 내가 행동하고 사고할 때 놓치지 않으려는 두 축이고, 솔직히 지금도 매일 어느 한쪽이 기우는 걸 느끼며 다시 바로잡는 중이다. 매일 보내는 하루의 낮과 밤의 햇빛과 달빛을 곁에서 지켜보며 말이다.
당신의 두 문장은 무엇인가
여기까지가 내 이야기다. 그런데 이 글을 내 아이들 이야기로만 닫고 싶지는 않다.
질문을 돌려드리고 싶다. 당신의 인생을 꿰는 문장은 무엇인가.
거창할 필요 없다. 철학자의 문장일 필요도 없다. 당신이 살아온 시간 속에서 — 넘어졌던 자리, 후회했던 선택, 그럼에도 다시 일어났던 순간들 속에서 — 반복해서 확인된 것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당신의 핵심이다.
아직 없다고 느껴진다면, 그것도 괜찮다. 없는 게 아니라 아직 문장이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시간을 내어 자문해 보라.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 내 행동의 기준은 무엇이었나. 흔들릴 때 나를 다시 세운 것은 무엇이었나.
그리고 찾았다면 — 적어두라. 머릿속의 원칙은 흐려지지만, 적힌 문장은 흐려지지 않는다. 꼭 아이의 이름에 담을 필요는 없다. 수첩의 첫 장이어도, 책상 앞 메모여도, 당신만의 블로그여도 좋다. 중요한 것은 그 문장이 보이는 곳에 있어서, 흔들리는 날 당신을 다시 세워 주는 것이다.
나는 내 두 문장을 매일 아이들의 이름으로 부른다. 당신의 두 문장도, 매일 닿는 곳에 있기를.
그리고 그 문장대로 살아내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고, 오늘도 한 걸음 이어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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